리뷰

넷플릭스 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와 유대교 하시디즘

forestjune 2020. 4. 19. 19:52

한창 넷플릭스를 잘 안 보다가 슬금슬금 새 쇼를 찾아 보는 요즘, 트위터에 많이 보였고 소개 화면에 뜨는 스틸컷이 강렬해서 궁금했던 <그리고 베를린에서>를 봤다. 시즌 1만 나와 있고 회당 50분가량, 총 4회 분량이라 하루면 다 볼 수 있는 시리즈다.

 

드라마는 뉴욕 윌리엄스버그 내 폐쇄적인 극정통파 유대교 하시디즘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견디다 못한 19살의 에스티는 탈출을 감행한다. 그 배경에는 임신만이 여자의 존재 목적인 것처럼 부부의 성생활을 하루가 멀다 하고 감시하는 시어머니와, 결혼 직후에 재깍 임신한 형수들과 다르게 왜 너는 안 되냐며 에스티를 탓하는 남편 얀키가 있다. 에스티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증오하지만, 그런 엄마에게서 '혹시 모르니 가지고 있으라'고 받았던 독일 시민권 증명서를 가지고 베를린으로 향한다. 에스티는 새로운 도시에 적응해가던 중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로베르토를 통해 가게 된 음악원에서 생애 첫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어설프게나마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는 에스티는 음악원 장학생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꿈을 꾸고, 베를린에서 사귄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며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을 한다.

 

한편 얀키 가족은 에스티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한바탕 난리가 나는데 제 엄마가 있는 베를린으로 갔을 거라 짐작하며 에스티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에서 쫓겨났던 것으로 짐작되는 천덕꾸러기 사촌 모이셰를 불러들이고, 얀키는 모이셰와 함께 베를린으로 떠나게 된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고 아주 아주 흥미롭고(괴롭다는 의미 포함) 잘 만든 시리즈라 몇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됐다.

 

 

(스포 천지입니다. 보시고 나서 읽어 주세요.)

 

 

 

뉴욕의 폐쇄적인 유대교 하시디즘 공동체를 조명

나도 그랬지만 후기를 찾아보니 뉴욕 한복판에 이렇게 폐쇄적이고 신실한 유대교 공동체가 있는지 몰랐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럴 법도 한 게, 미디어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우리 세대는 '보여지지 않는 것'에 관심 갖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뭘 보기로(=알기로) 선택하는 것도 사실은 주어진 몇 가지 옵션 중에서 내리는 결정일 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 넷플릭스에서 이런 시리즈를 만들지 않았다면 내가 이들 공동체에 대해 언제쯤 알게 됐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종교알못(특기: 알못)으로서 좀 찾아 보니, 하시디즘은 18세기 동유럽 국가에서 이스라엘 벤 엘리저가 창시한 유대교 종교운동으로, 동유럽 전역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하시디즘은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이전까지 부흥하다가 이후 유대인이 처형당하고 마을이 파괴되면서 하시드 유대인 대부분은 이스라엘이나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유대교도 분파가 다양하겠으나 본인은 종교에 관한 지식이 일천하여 더 자세한 설명은 어렵다..

코라 연구를 한답시고 생업은 내팽개친 채 국가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하레디가 있는가하면 드라마에 나온 하시디즘은 어찌 됐든 사업도 하며 삶을 영위한다. 그렇다 해도 종교의식을 엄격하게 따르고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여서 여자는 그저 부차적인 존재, 남자 뒷바라지하고 애 낳고 키우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에 머무르기 마련이다. 이런 공동체의 특성상 남자들은 아무 말 안 해도 그 남자들의 세계관에 지독하게 찌든 이전 세대의 여성들이 그들을 대신해 남성의 목소리를 낸다. 남자는 잠자리에서 왕 대접을 받아야 하고, 자꾸 임신이 안 되니 애가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둥 헛소리를 하는 시어머니가 바로 그런 캐릭터의 전형이다. 그 말에 에스티가 '그럼 저는 왕비인가요?'라고 대꾸하자 시어머니는 모른 척 곧장 주제를 돌린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좀 더 알아보고 싶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제작한 하시디즘 관련 짧은 다큐멘터리 하나를 봤다. 아래에 링크를 첨부할 테니 드라마를 보고 관심이 생긴다면 보시길 바란다. 다큐에 따르면 하시딤(하시디즘 사람들을 칭함)은 하루 14시간을 기도하고 교리 공부에 보낸다고 한다. 하루에 무려 613개의 율법을 따르고, 안식일에는 허용되는 게 뭔가 싶을 정도로 금지 규정이 많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히브리어와 이디시어를 배우고 유대인 교육을 받지만 그 외 기초 교육 수준은 아주 낮은 상태다. 성인이 되어 하시디즘을 떠난 사람들을 교육하는 풋스텝이라는 기관에 따르면 이들의 교육 상태는 초등학교 5학년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인터넷과 TV가 금지된 공동체에서 성장했기에 대중문화 상식은 물론이고 컴퓨터 사용 능력도 떨어진다. 남자와 여자 간에 인간적 관계를 맺는 법도 여기서 배운다. 

 

하시디즘을 떠난 한 여성은 단 몇 마디로 하시디즘 여성의 삶을 요약한다. "하시디즘 안에서 여자의 역할은 엄마와 아내로만 정의돼요. 여자들은 직업을 가지려 하지 않아요. 인생에서 뭔가 이루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죠. 그저 엄마가 돼서 열 명의 자녀를 두는 게 하나님이 원하는 삶이라고 여길 뿐이죠."

 

하시디즘 여성들은 히잡을 쓰는 여성들에 비하면 겉으로 보기에 좀 더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드러난 머리카락은 가발이다. 결혼한 여성들은 밖에 나갈 때 항상 가발을 써야 하므로. 다큐에 나온 한 여성에 따르면 '여자의 아름다움은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결혼한 여자는 남편에게만 머리를 보여 준다'고 한다... 갑작스레 남자가 방문할 때를 대비해 집에서도 가발을 쓴다. 뭔 지랄인지.. 드라마에서 결혼 전엔 금발이던 에스티가 결혼 후 흑발로 바뀌는 건 이 때문이다. 에스티가 가발을 벗어 던지는 순간은 자유를 향해 한 발짝 내딛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겠다는 선택

여성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결혼식 장면이나 임신을 위해 원하지 않는 섹스를 거듭 해야 하는 장면이 그러한데, 먼저 결혼식 장면부터 얘기해보자.

 

온갖 규율에 얽매여있는 공동체치고 결혼식은 상당히 자유롭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본격 식이 시작되면 남자들이 자기들끼리 노래인지 기도문인지를 장황하게 부르며 신랑을 신부에게 데려오고, 이어 남자들이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신부의 머리를 붙잡고 기도문을 읊는 의미 불명의 의식이 이어진다. 피로연에서도 남자들끼리 신나서 춤추고 노래하다가, 신부에게 검은 끈을 쥐이고 그걸 남자들이 차례로 맞잡았다가 놓고 가는, 의미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기분 나쁜 의식이 행해진다. 이때부터 에스티는 결혼이라는 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 잘못된 것임을 직감하는 듯하다. 그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공동체 내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남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애를 낳을 도구로써 여성을 그 집안에 편입시키는 관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현대의 결혼식이란, 결혼식만큼은 신부가 원해왔던 대로 평생의 로망을 실현하는 이벤트로 여겨지곤 한다. 이들의 결혼식에는 그런 기만이 없다는 점에서 아주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 결혼식에서부터 '결혼은 여성을 위한 게 아니야'라고 못 박는 듯이 말이다. 하시디즘의 존재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도 역시 힘들겠다. 여성이 남성의 거룩한 위업 달성에 도구로써만 이용되고 착취되는 문화를 정상적인 문화라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것과는 별개로 사실 고증이 너무 뛰어난 데서 오는 괴로움이 상당했다는 점을 밝혀 둔다. 제작진이 의도 없이 그랬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식 내내 신랑은 저렇게 눈을 감은 채로 앞뒤로 몸을 흔들며 기도문을 중얼거리고, 결혼식이 끝났다는 의미로 신랑이 유리컵을 밟아 깨뜨릴 때까지 신부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성관계 장면이다. 하시디즘 사회는 남녀 분리가 엄격해서 결혼 전에 이성과 관계(성적 관계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사람 간의 관계) 맺는 법을 없다고 한다. 에스티는 결혼 직전 상담사인지 뭔지 모를 여성한테서 벼락치기처럼 성생활 조언을 듣게 되고 그제야 '질'의 존재를 알게 된다(나중에 이 사람이 질 확장기도 줌...... 할많하않). 에스티와 얀키는 결혼한 직후로 매일밤 관계를 시도한다. 사랑과 쾌락으로 하는 섹스가 아닌 오로지 임신만을 위한 섹스. 허나 기본적인 성교육도 받지 못한 무지한 여남이 다짜고짜 성관계를 하려니 잘 될 리가 없다. 얀키 새끼 또한 아무것도 모르므로 아무 단계도 거치지 않고 다짜고짜 성기를 들이밀 뿐이고 이에 에스티는 고통을 호소하며 계속하기를 거부한다. 얀키는 자신의 많고 많은 형수들은 결혼 후 9개월째에 재깍 아이를 생산해냈다는 점을 들며 너한테 문제가 있는 거라고 가스라이팅을 시전한다(이 개새가..). 여기서 드는 의문은, 그 많고 많은 형수들과 남편들도 이들처럼 무지했을 텐데 형수들이라고 고통이 없었을까? 그럴 리가. 에스티와 똑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남편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수했을 것이다. 입 꾹 다물고 눈 꽉 감고 혼자서 참아 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그들의 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규율이기에. 그리고선 여섯 일곱까지 쭉쭉 애를 뽑아내는 기계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보는 이를 필연적으로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꼭 필요했던 불편함이라고 본다. 그걸 모니터 바깥에서 보고 있을 관객이 불편함을 느끼고, 그렇다면 이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제작자의 목적이었다면 말이다.

 

 

다큐에는 하시디즘의 생활 방식을 견디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 그곳을 떠난 사람,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공동체 속으로 들어간 사람, 어릴 적부터 속해 있던 공동체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규율을 따르며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 현대에 맞게 하시디즘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람까지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나온다. 뿌리는 같아도 각자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고 믿는 삶을 찾아서 나아간다. 하시디즘을 탈출하는 남자들도 있는 걸 보면 그들도 엄격한 규율에 사로잡힌 공동체의 희생자다. 그렇지만 내가 더 초점을 맞추고 싶은 부분은 당연하게도, 조직적으로 한 성(性)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공동체에 속해 있는 여성들이다. 메이킹 필름에서 얀키 역의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천진하고 순수한 인물이다. 그저 오직 한 가지의 진실만 알고 있을 뿐."  세상에는 다른 진실도 있다는 걸 그들에게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이 정도만 해야겠다. 나탈리 포트먼을 떠올리는 에스티 역의 배우 쉬라 하스 연기는 그냥 직접 보시면 된다. 이렇게 장황하게 영업을 했으니 안 보시면 서운할 것.. 많이 봐줘야 시즌 2도 제작되겠지요? 꼭 보시기를 바라고 저는 이제 <메시아>를 달려보려 합니다. 보시고 재밌으셨으면 댓글도 좀 남겨 주세요.. 아 보시기 전에 읽었으면 스포가 많았을 것인데.. 여하튼 읽어주셔셔 감사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D%95%98%EB%A0%88%EB%94%94

하레디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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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u.wiki

제가 원래 나무위키 극혐하는데.. 이건 정리가 잘 돼 있더라고요. 재밌고 속 터집니다.

 

 

https://youtu.be/_d5oBQq4qdg

저 링크 안에 있지만, 본문에서 언급한 다큐 <NGC 인사이드: 유대교의 하시디즘>. 이것도 재밌습니다.